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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과 학습, 기억력: 공부보다 잠이 먼저다

by eunjoo0424 2025. 7. 24.

민달팽이 사진

디스크립션

 

공부는 뇌의 일이다. 그러나 뇌는 ‘깨어 있는 시간’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학습은 우리가 자는 동안, 뇌가 정보를 정리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할 때 일어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의 신경과학 연구와 신경가소성 이론을 통해, 수면과 기억력의 밀접한 관계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본다. 공부보다 잠이 먼저라는 말,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사실이다.

 

에릭 캔델의 기억 이론과 수면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뇌 속에서 기억이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은 바로 에릭 캔델(Eric Kandel)이다. 이다. 그는 2000년, 신경생물학 분야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인물로, 신경세포의 변화와 기억 형성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에릭 캔델은 실험 대상으로 민달팽이(Aplysia)를 택했다. 민달팽이는 신경세포의 크기가 크고, 개체 내의 뉴런 수가 적어 뇌 구조 분석에 적합한 생물이다. 캔델은 민달팽이가 특정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되며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실험은 ‘기억은 뉴런 사이의 신호 교환 그 자체’라는 개념을 정립했고, 현대 뇌과학의 핵심 이론인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탄생시켰다. 즉,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 훈련과 경험을 통해 물리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기억의 ‘정착’은 깨어 있을 때가 아니라, 자는 동안 이루어진다. 에릭 캔델은 수면이 기억을 단단히 각인시키는 ‘제2의 학습 시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가 단기기억으로 들어온 후, 수면 중 해마(hippocampus)와 대뇌피질(cortex) 사이의 신호교환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때 깊은 수면(Non-REM 수면 단계)은 기억 정리에, 렘수면(REM 수면)은 감정 처리와 창의적 문제 해결에 주로 관여한다. 따라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학습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면과 해마체, 대뇌피질의 정보 전환 메커니즘

 

정보가 뇌에 입력되는 순간, 가장 먼저 작동하는 기관이 해마(hippocampus) 다. 해마는 ‘단기기억 저장소’ 역할을 하며, 그날 학습한 내용을 일시적으로 보관한다. 하지만 해마의 저장 용량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필요 없는 정보는 빠르게 사라지고, 중요한 정보만 선별해 대뇌피질로 전송한다. 이 전송은 깊은 수면 중에 가장 활발히 진행된다.

 

이 과정을 잘 설명한 것이 2013년,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진행된 뇌파 연구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학습시킨 뒤, 한 그룹은 수면을 취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깨어 있도록 했다. 이후 이들의 기억 유지 정도를 측정한 결과, 수면을 취한 그룹이 기억 유지율에서 40% 이상 우세한 결과를 나타냈다.

 

이는 우리가 자는 동안 뇌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정보를 정리하고 중요한 신호는 신경망을 통해 반복 송출한다는 뜻이다. 이 반복 송출은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강화시키고, 장기기억화를 촉진한다.

 

또한 수면 중 분비되는 성장호르몬과 시냅스 재생물질은 손상된 신경망을 복원하며 뇌의 효율성을 높인다. 따라서 공부, 운동, 창작 등 어떤 기술이든 **‘숙면 후 반복’**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이다.

 

이 메커니즘은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성인 학습자, 직장인, 운동선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잠을 줄이며 성취를 쌓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수면 부족이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

 

‘밤을 새워 공부했다’는 말이 자랑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신경과학은 이 방법이 인지 기능을 오히려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수면 부족은 단기적으로 집중력 저하, 장기적으로는 기억력 감퇴, 감정 조절 실패, 우울증 유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 201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실시된 수면 실험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정 시간 학습을 시킨 후, 절반은 8시간 수면을, 나머지 절반은 4시간 이하의 수면을 하게 한 다음, 다음날 동일한 문제를 풀게 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수면 부족 그룹은 정확도가 평균 30% 낮았고, 반응 시간도 느려졌다.

 

이 외에도 수면 부족은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의 활동을 저하시켜, 사고력과 판단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실수를 유발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을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전반적인 학습 능률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겪는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시험장에서 멍해진다’는 경험도 수면 부족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기억한 정보는 단순 저장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 능력은 수면을 통해 유지된다.

 

결론: 공부보다 잠이 먼저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잠을 잘 자야 한다. 기억력과 학습은 단순히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물리적 변화와 회복 과정을 필요로 한다. 수면은 이 모든 과정의 중심이다.

오늘 배운 것을 내일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면, 밤새는 선택이 아닌 숙면 루틴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바로 수면이다.